그리스 로마신화, 제우스, 올림푸스 역사

술의 신 디오니소스, 그리스 로마 신화

위아드 2022. 6. 30. 23:37

술의 신 디오니소스, 그리스 로마 신화

술의 신 디오니소스, 그리스 로마 신화
술의 신 디오니소스, 그리스 로마 신화

로마 신화에서 바쿠스(Bacchus)로 불리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는 다른 올림포스 신들에 비해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인 제우스는 신이지만 어머니는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디오니소스가 올림포스 12 신 반열에 올랐다는 점입니다. 어머니가 인간인 경우 12 신에 지위에 오르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경우는 영웅 헤라클레스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 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제우스의 자식들인 헤라클레스와 디오니소스는 당연히 질투에 눈먼 제우스의 정식 부인 헤라로부터 출생 전부터 엄청난 고통과 박해를 받습니다. 또 다른 점은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는 출생의 문제입니다. 올림포스 12신중에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아버지인 제우스의 몸에서 태어난 두 신이 있는데, 바로 아테나와 디오니소스입니다. 제우스의 머리를 깨뜨리고 태어난 자가 지혜의 여신 아테나라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다리의 허벅지에서 자라다가 태어납니다. 이렇게 디오니소스는 인간을 어머니로 하면서 아버지의 몸에서 태어나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신의 제왕인 제우스와 인간인 테베의 공주, 세멜레 사이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라의 질투의 희생양이 된 세멜레는 디오니소스를 잉태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아요. 헤라의 계략에 속아,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제우스 신이 맞는지 또 진정 제우스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세멜레는 변장을 한 헤라가 시킨 대로 제우스에게 눈부신 천상의 갑옷 입은 모습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제우스는 이를 허락합니다. 세멜레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생각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간청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제우스가 빛나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세멜레 앞에 서자마자 세멜레는 인간이기 때문에 갑옷의 눈부신 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 죽게 됩니다. 타 들어가는 세멜레의 몸에서 간신히 아이를 꺼낸 제우스는 태아를 자신의 허벅지, 즉 넓적다리에 넣고 키워 출산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자식이 디오니소스입니다. 제우스의 부탁으로 디오니소스는 아시아 니사 산의 요정들에게서 키워집니다. 그곳에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전수한 후 디오니소스는 그리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는 주신, 즉 술의 신, 또 풍요의 신, 비극의 신, 음악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디오니소스 축제

디오니소스 축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니사와 트라키아 거쳐 그리스로 돌아오는 이동경로는 포도와 포도주가 전해진 경로와 일치합니다.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도취와 광기에 빠지게 하는 술의 기능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군상들에게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해방감을 선사했고, 술의 힘은 잠시나마 고통과 번뇌를 잊게 했습니다. 한겨울 어두운 밤에 거행되던 디오니소스 축제는 생명력의 절정을 체험하게 하는 황홀한 도취와 환각의 순간이었고, 술에 취해 마비 상태가 된 사람들은 횃불과 디오니소스의 지팡이인 '티르소스'를 흔들고 타악기인 북을 치며 광란의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초기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여성이나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여신도들은 집을 버리고 가출한 채 무리 지어 산과 들을 누비고 다녔으며, '미친 여자들'의 뜻인 '마이나 데스'로 불렸다고 합니다. 술은 이성의 한계를 깨뜨려 감성을 한껏 부풀게 하고, 정욕을 자극하며 육체적 본능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신도들은 가면을 쓰고 대담한 성적 행위를 감행하며 적극적으로 사랑했는데, 보통 이 축제는 난잡한 집단 성행위로 끝을 맺었다고 하네요. 특별히 머리와 몸은 남자이고 머리의 이 뿔은 그리고 또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한 괴물과 같은 '사티로스'라는 추종자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은 동물 중에서도 염소의 탈을 사용했으며 뻔뻔하고 음란한 성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디오니소스나 그의 무리들이 술을 마시고 저지른 돌발적인 행동이나 술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는 무수합니다. 또 디오니소스 개인적으로 혹은 그의 무리들이 집단적으로 박해를 당한 경우도 많았어요. 그러나 디오니소스를 박해하다가 파멸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디오니소스 축제가 환한 대낮이 아닌 추운 한겨울 밤에 진행된다는 것은 축제의 본질이 어둠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밝음을 상징하는 신은 태양의 신 아폴론이며,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완전히 대비되는 신입니다. 아폴론의 밝은 이성이 약해지는 겨울밤에 디오니소스의 광기와 도취가 힘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폴론은 일정한 형식과 틀이 존재하는 차가운 이성의 세계를 추구하는 신이며, 이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의 광기는 절제의 고리를 끊고, 세상 법칙을 해체하며,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 갇히기를 거부한 채 뛰쳐나가려는 무한한 자유나 영원한 해방감과 통합니다. 인간이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매 순간 긴장하고 갈등을 겪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립은 인간 내면의 이중성이나 야누스적인 성향을 상기시켜요. 합리주의를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이 숭상하는 대표적인 신은 당연히 이성과 절제의 신 아폴론이었습니다. 도취와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인들에게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을 수 있습니다.

디오니소스와 니체

이번에는 디오니소스와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러나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도취와 환각을 대변하고 동물적 본능을 상징하는 신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술의 힘이 해방감과 생명력의 절정을 맛보게 하고,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을 뿐 아니라 세상을 분열하는 상태를 유도하며, 기존 세상의 규칙을 거부하는 파괴력을 가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정해진 규격과 틀을 깨뜨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갈망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영원한 소망이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아닐까요? 시간과 공간이 변화하고 주위 환경이 변하는데 고정된 시각과 기존의 규칙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항상 합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디오니소스요, 술과 풍요의 신일 뿐 아니라 음악의 신, 비극의 신이기도 합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연극은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특히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 신화가 쓰여지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를 거쳐 기원전 5세기경에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리스 비극을 통해 고대 그리스 정신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디오니소스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은 철학자가 바로 '생의 철학'을 주창했던 니체(Nietzsche)입니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창조성'이 바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철학자 니체는『비극의 탄생』이라는 저서에서 그리스 비극의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 요소의 충돌과 균형 그리고 융합이 그리스 비극을 위대하게 한다고 말했어요.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아폴론적인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무한한 파격을 허용하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에 더 큰 찬사를 보낸 거죠. 인간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의 도도함 속에 함께 할 때, 그래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될 때, 인간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생의 철학자인 니체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를 '초인', 즉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라고 불렀습니다. 니체는 원래 쇼펜하우어 철학의 영향, 바그너 음악극의 이해, 고대 그리스 정신에 대한 애정으로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이후 니체는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로부터 거리를 두었지만, 그리스 정신은 계속하여 그의 철학 이론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연결되어 '미적인 학문'이나 '학문의 예술화'로서, '예술과 학문'의 관계 설정을 시도한 것이었으며, 이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독재를 거부한 반이성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니체는 이성과 비합리,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흑백 논리로 양분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소크라테스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즉 철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지점이 있고, 정신과 자연, 합리성과 신화, 객체와 주체의 차이가 사라지고 하나가 되는 지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니체의 생각은 바로 당시의 시대정신에 대한 거부였으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파괴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