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와 그의 문학세계 -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와 그의 문학세계 - 오이디푸스 왕
아이스킬로스가 세 개의 작품을 하나로 엮는 삼부작을 고집했다면, 뒤를 이은 소포클레스는 각 작품을 독립적으로 완성시키는 등 그리스 비극의 형식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루고 현대 서구 연극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적인 면으로는 비극의 원인을 신에서 인간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관점을 도입했으며, 그의 비극은 되게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휩쓸린 인간의 고뇌를 다룹니다. 주로 그리스 신화와 전설에서 인물을 차용하여 운명 앞에선 나약한 인간, 그리고 인간성의 진실을 보여주면서도 인간의 스스로의 판단과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부각합니다. 이제 그의 걸작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기원전 429년에서 42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신탁으로 내려진 운명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처절한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극은 오이디푸스 왕이 통치하던 테베 지역에 고치기 어려운 전염병이 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역병에 고통받는 테베 백성들은 오이디푸스 왕에게 오래전 나라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 그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라를 구한 것처럼, 이번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오이디푸스는 이 청을 수락하고 먼저 처남 크레온을 델포이 신탁 소로 보내 원인을 알아보라고 하는데,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자가 역병의 원인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끝까지 범인을 밝혀내라는 자신만만한 오이디푸스의 지시에 따라 원인을 추적한 결과, 놀랍게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살해자임을 알게 되고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신탁은 테베를 뒤덮은 역병의 재앙을 면하기 위해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원인을 찾다보니 바로 오이디푸스 왕의 출생이나 가족관계와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라이오스 왕은 젊었을 때 한때 엘리스의 펠로프스 왕의 궁궐에 망명하여 지냈는데, 당시 아름다운 왕자 크리시포스를 사랑하여 동성애에 빠졌고, 이 때문에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되고 만약 이를 어기면 아들 손에 죽으리라는 펠로프스 왕의 저주와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내 이오카스테와 동침하여 아들 오이디푸스를 얻자, 신탁이 두려웠던 라이오스는 차마 아들을 그 자리에서 죽이지 못하고 양치기를 시켜 깊은 산 기타 이론에 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양치기는 아이를 나무에 걸어놓는 대신 코린토스에서 온 다른 양치기에게 넘기게 되고, 마침내 죽음을 면한 오이디푸스는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의 폴리 보스 왕의 양자가 됩니다. 코린토스의 왕자로 살면서 가끔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을 듣고 고민하던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사실 여부를 묻게 되는데,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아내로 맞으리라'는 무서운 말을 듣습니다.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부모를 멀리하면 무서운 신탁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코린토스에서 먼 곳으로 유랑을 합니다. 그러다 도중에 좁은 삼거리에서 마차를 탄 노인과 그의 부하들을 만나 먼저 길을 비키라는 시비 끝에 노인이 오이디푸스를 채찍으로 내리치게 되는데, 이에 분노를 이기지 못한 오이디푸스가 노인을 죽여 버립니다. 이 노인이 바로 테베의 왕 라이오스로,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르게 친아버지를 죽인 것입니다. 라이오스는 자신의 왕국에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기에 델포이로 신탁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방랑을 계속하던 오이디푸스는 얼마 후 여전히 스핑크스로 고통받는 테베에 도착합니다. '목 졸라 죽이는 자'라는 뜻을 가진 '스핑크스'는 상체는 여자이고 하체는 사자의 몸에 날개가 달린 괴물인데,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수수께끼를 내어서 맞히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이곤 했습니다. 테베 왕가에서는 이 괴물을 퇴치하는 영웅에게 비어있는 왕 자리와 과부가 된 왕비를 주기로 공약을 내겁니다.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다리, 점심에는 두 다리,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게 무엇이냐는 것이었고 답은 '인간'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기어 다니니까 네 다리, 크면 걸으니까 두 다리, 늙으면 지팡이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말하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합니다. 약속대로 오이디푸스는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맏딸 안티고네를 비롯하여 2남 2녀를 낳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아내로 취하리라던 신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동안 평화롭던 테베에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 왕은 신탁을 묻게 되고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야 해결된다는 대답이 나오자, 정의감에 사로잡혀 끝까지 추적하는 아이러니를 범합니다. 지금의 남편인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충격을 받은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 또한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이오카스테의 옷을 고정시키는 핀으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됩니다. 그리고 왕위를 버리고 죽을 때까지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테베 곳곳을 방랑하며 자신의 죄를 참회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찔러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자신의 비운을 한탄하고 절규하는 장면은 비극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오오, 빛이여, 너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해 다오. 태어나서 안 될 몸에서 태어났고, 함께 해서 안 될 분과 살았으며, 죽여서는 안 될 분을 죽였으니. " 이렇게 진실을 알지 못했던 그는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운명에 의해 잘못을 저질렀고 이 잘못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나약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스어로 이러한 운명의 잘못이나 성격의 결함을 '하마르티아'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그는 하마르티아의 희생자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운명을 극복하려는 결말
그러나 자신이 왕을 죽인 살인자일 리 없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비극적인 결과의 부분적인 원인이라고 본다면, 그의 자신감과 오만이 비극적인 운명의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나도 모르는 운명 탓이었다고 잘못된 행위를 변명하지 않고,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처벌하고 고난을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운명을 극복하려는 위대함과 영웅적인 면모를 오이디푸스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비극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극찬하면서, 평범한 인간이 아닌 오이디푸스 같은 고귀하고 탁월한 인물이 비극적인 운명으로 괴로워하고 추락할 때, 관객은 공포와 연민을 느끼며, 이러한 운명적인 몰락의 정점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적 정화 상태인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보았습니다.